서부전선의 해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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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전선의 해병대

 1952. 3. 17-1953. 7. 27 

We gave up the ground, but we may well have saved the war.                               

          - 미해병 제1사단의 "장진호 전투" 중에서 -   

해병 제1연대 배치도(장단 및 사천강지역) 

위의 전투상황도는 해병 제1연대가 중동부전선으로부터 1952년 3월 17일 서부전선(경기 장단 및 사천강 지역)으로 이동 후의 최초 부대 배치도이며 우일선대대에 제1대대, 좌일선대대에 제3대대 그리고 연대예비대인 제2대대는 좌일선대대의 후방에 위치하고 있음. 우일선대대의 전방 우측에 '67m 고지'가 위치하고 있으며 그 남쪽(아래)에 '36m고지' 그리고 바로 남쪽에 '39m고지', '33m고지', 및 '31m고지' 순으로 위치하고 있음. 좌일선대대의 전방에 '87m고지'가 위치하고 있으며 고지 앞을 '사천강'이 북에서 남으로 흐르고 있음.
위에 보이는 강은 '임진강'이 남쪽(한강)으로 흐르고 있음을 보여주며 오른쪽 윗부분에 '통일교'와 그 밑으로 '자유의 다리'가 보이고 있음. 남북으로 그어진 황색선은 DMZ를 표시하며 동쪽(오른쪽)은 아군지역, 서쪽(왼쪽)지역은 북한군지역으로 되어 있음.'사천강'은 사진의 왼쪽부분(황색선의 서쪽)에 북에서 남('임진강')으로 흐르고 있음.


'도라산'은 사진의 오른쪽 윗부분에 진한 갈색으로 보이는 부분(산)이며 '도라산'의 하록을 통과하는 '경의선'을 중심하여 우측에 1개 지역 좌측에 2개 지역으로 나눠져 보이는 구릉(낮은 고지) 같은 지역일대에 우일선대대의 5개 전초가위치하고 있었음. '사천강'은 사진의 좌측에서 북에서 남(한강)으로 흐르고 있음.

이 전초진지 일대에서 이 나라의 수많은 젊은이들, 해병들이 대한민국을 위하여 그들의 청춘과 목숨을 희생했다는 사실을 우리, 대한민국 국민은 일순간도 잊어서는 안된다.
    오른 쪽에 '임진강'이 북에서 남(한강)으로 흐르고 있으며 강 중간에 '임진가'철교가 보이고 있음.

본 내용은 1951년 초부터 중동부전선(강원도)의 산악지대에서 혹한과 싸우며 북한군과 전투 중에 있던 우리, 해병 제1연대(연대장 김동하 대령 부연대장 공정식 중령)는 중동부전선에서 1952년 3월 17일 미해병 제1사단의 작전 통제하에 수도서울의 관문인 서부전선(장단, 사천강지역)으로 이동 후 휴전 시(1953년 7월 27일)까지의 기간 중 '사천강'변을 연하는 7개 전초진지를 지형의 절대 열세 속에서 운영하면서 중공군의 '인해 전술'에 대항하여 혈전을 벌였다.

서부전선으로 이동 직후(3월 25일) 김석범 대령(준장에서 임시계급)이 연대장으로 부임했으며 남상휘 중령(제1대대장)이 부연대장으로 보임되고 제1대대장에 부대대장인 함덕창 소령이 임명되었다. 좌일선대대는 최초 제3대대(대대장 안창관 소령)가 배치되었으며 다음에 제2대대(대대장 박성철 소령)가 배치되었다.

1년 4개 월에 걸친 전투에서 우리해병들은 2개 사단의 중공군을 분쇄했으나 유리한 지형을 이용한 그들의 전술과 '인해 전술'로 인하여 결국 우일선대대의 '155m고지'의 2km 전방에 위치하고 있고 전초진지 중 가장 높은 요지인 '67m고지' 및 4개 전초진지와 좌일선대대 전방 4km에 위치하고 있는 '사천강'변의 요지인 '87m고지' 및 50m고지' 등에서의 전투로 776명의 전사, 3214명의 전상자를 내고 '장단, 사천강'지역 일대(전초진지)를 적에게 내어주고 말았다.

그러나 우리, 해병 제1전투단(10월 1일부로 전투단으로 승격 전투단장 김성은 대령)은 중공군의 유리한 지형을 이용한 집요한 파상공격(인해 전술)에 많은 희생자를 냈지만 그들의 주요 전략목표였던 '임진강'철교를 확보함으로서 전술적으로는 전초진지일대를 상실했으나 전략적으로는 해병 제1전투단은 '임진강' 철교를 확보함으로써 승리한 전투였다.  

당시 필자는 중동부전선에서 소총소대장(해병 제1연대 제1대대 제2중대 3소대장)으로 5개 전투에 참가했으며 서부전선에서는 좌일선대대였던 제2대대 제5중대장을 4개 월간 한 바있다. 특히 "도솔산 전투"에서는 2일 간 공격 중대에 많은 희생자를 내게했던 연대 목표 #4의 중간 목표인 '무명고지'를 AR사수와 둘이서 점령하여 미국정부로부터 Silver Star Medal을 수여받았다. 

필자는 '도솔산 전투' 중의 부상으로 진해 해군병원에서 1개월 간 입원 치료 후 다시 출동하여 중동부전선에서는 4.2" 중포중대 선임장교였으며 서부전선으로 이동 후 계속 4.2" 중포중대 선임장교, 소총중대장(제2대대 제5중대장), 또한 전투단 작전보좌관 및 제1대대 중화기 중대장을 했기 때문에 서부전선에서의 각종 전투 현황에 대하여 누구보다 정확하고 많은 경험과 지식을 갖고 있으며 또한 당시의 실상도 생생하게 아직 기억하고 있다.

필자는 이런 경험과 지식에 근거하여 우리, 해병 제1전투단의 전투경과를 통하여 숫적 절대우세 속에서, 병력 및 유리한 지형 조건 등을 갖추고 있던 중공군과의 전투에서 과연 우리는 전술적으로, 또 전략적으로 이 전투를 승리했는가? 그렇지 않으면 패배했는가? 즉 어떠한 위치에 있었던가하는 것 등, 그 내용을 우리의 후세대를 위하여 우리의 세대(한국전 참전자)가 끝나기 전에 고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지금은 오래 전의 전투라하여 잊혀진 전쟁(Foggoten War)으로 흔히들 말하지만 우리, 노 병들은 아직껏 그 전투의 실상을 어제 일처럼 잊지 않고 똑 똑히 기억하고 있다. 

人命在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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